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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 2 스페셜을 하고 난 이후, 내가 이 게임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그렇게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난 역시 원작 게임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상하긴 하지만 그것이 약간만 이상한 건 줄 알고 있었지 뭐야.
(게다가 그 당시의 찰즈는 초등학교 2학년 정도의 나이였기 때문에 세상 물정의 파악이 둔했다.)
어쨌거나 이스 2 스페셜은 셀몬 신전에서 완전히 막힌 시점이었고, 맵을 헤메는데 질려버린 나는 다른 게임을 하며 탱자탱자 시간을 보냈다(다시 말해두지만 이스 2 스페셜은 몇 차례의 도전끝에 클리어가 가능했고 그것은 먼 훗날의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스의 새로운 컨텐츠를 접하는 데는 그렇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몇 개월 후, 나는 형친구가 집에 놀러왔을 때 들고 온 책에 푹 빠지게 되는데 그 책은 바로
(필자가 2의 사진을 못 구해서 부득이하게 1의 사진을 올렸으니 이해 바람
표지 내용은 타이틀만 다르고 똑같다)
... 였다.
당시 게임북이란 개념은 이미 국내에서도 희귀한 편은 아니었다. 'IQ 만화 게임북'이라는 문공사의 게임북 작품은 당시 국딩들이 질질 싸는 초인기 시리즈였고,
장석준의 작품인 IQ 만화 게임북 시리즈.
지금 다시보면 표절컷과 표절캐릭터가 넘치는 부끄러운 작품이지만
당시 인기는 엄청났다.
그 밖에 새소년 게임북 시리즈, 영화로서 인기를 끌었던 쥬라기 공원 등도 텍스트 게임북의 형태로 발매된 바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스 게임북 또한 뭐 앞서 언급한 게임북들에 비해 유명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이스 시리즈랑 판타지에 관심이 있던 당시 사람들은 제법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이스 게임북은 일본에서 발매된 텍스트 게임북을 가메엔터프라이즈('드래곤볼 비밀 초연구'를 낸 곳으로 유명한 출판사)에서 번역하여 발매한 것이다.
메모리얼 어쩌구 시스템을 도입해서 능력치 수치와 장비구, 이벤트 충족 요소 등을 따로 카드에 기입하게끔 되어 있었다.
전투방식은 당연히 몸통박치기
일 수가 절대 없었으며 일단 방식은 주사위 굴림 + 무기공격력 + 배틀포인트(이건 레벨업과 회복지점에서만 올릴 수 있으며 싸움에 임하며 적당량을 원하는 만큼 소비하면 된다)이 일정한 수치를 만족시키면 적을 쓰러뜨리고, 못 쓰러뜨리면 데미지를 입는 그런 방식이었다. 파이어 마법을 얻을 경우엔 배틀P대신 MP를 사용하는데, 이때는 적을 물리치는데 필요한 필수수치가 낮아지는 그런 것이 있었다.
스토리 상으로는 그래도 이스 2 스페셜에 비하면 원작에 훨씬 충실한 편인데, 덕분에 나같은 사람은 오히려 스토리가 헷갈리는 문제점이 되기도 했다. 특히 문제의 다크 시리즈가 나오지 않는 것이 가장 의아했음. 설마하니 이스가 다크 시리즈 없이 전개될 수 있을 줄이야... 라는 의문이 농담 아니고 진지하게 나왔었다.
그러나 이 작품도 완전히 원작과 같은 전개는 아니고 오리지널 요소가 상당한데 일단 주인공부터가 아더(이 게임북에서는 아돌이란 이름이 어색하다고 판단했는지 아더라고 나온다)이 아니다.
여기의 주인공은 유로라는 이름부터가 처음 듣는 좆뉴비 새끼인데 이 놈이 어떻게 주인공을 해먹느냐 하면 이 놈은 원래 에스테리아의 도둑이었다. 그런데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오오 아더님 다므의 탑에서 악마들을 무찔러 우릴 구해주십시오...'하는 부탁을 받는데 이 후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니 용사 아더가 은무구를 가진 채 다므의 탑에 갔다는 것이었다. 아시다시피 이스의 세계관에서 은은 사실 크레리아이며 엄청나게 값비싼 귀금속이므로 유로는 그것을 훔칠 요량으로 다므의 탑을 오른다.
유로가 탑의 정상에 올랐을 때는 이미 아더가 덜크 팩트(작품 표기에 따름)를 쓰러뜨린 찰나였는데, 유로는 그것을 훔쳐보다가 갑자기 아더를 감싸는 빛에 덩달아서 휩싸이게 되고 정신이 들었을 때 그는 이미 이스에 있었다. 옆에는 은무구를 입은 아더가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그런데 유로가 자세히 보니, 이 아더라는 놈은 생김새나 체구가 자신과 완전히 똑같은 것이다. 그래서 유로는 아더의 은무구를 훔치고, 이스를 구할 영웅행세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이 후의 전개는 원작의 그것과 거의 같다.
다만 문제는 졸지에 거지가 되어버린 아더인데, 이 후 아더는 팬티만 입은 채 자신의 물건을 자랑하며 당당하게 란스 마을에 입성했다가 변태로 몰려 엄청 쳐맞은 뒤 쫓겨나고(틀림없이 물건이 작았다고 판단된다), 역시 팬티차림으로 놀티아 빙벽을 헤매는 등 지독한 고생을 한다.
그러나 여신의 인도에 따라 용사로서 각성하게 된 유로는 어느 덧 아더와 같은 영웅이 되고, 아더는 그런 그와 함께 결국 마를 물리치기로 하게 된다. 아더가 합류했으니 이제 카드가 2장이 되어 아더의 스테이터스를 따로 관리하면... 좋았겠지만 그것까지는 구현을 안 했다. 귀찮았나보다. 다만 분기에 따라 아더와 잠시 떨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같이 안 가면 죽는다던가 하는 전개는 있다.
엔딩도 물론 달라져 있는데 나름대로의 반전도 존재한다. 사실 아더의 아버지는 젊어서 여행가였고, 에스테리아 쪽에 와서 한 여자와 관계를 맺었는데 그 때 콘돔이 터져서 생긴 아이가 바로 유로였다는 반전이다. 이 작품 하나로 인해서 나는 어른들의 세계를 알게 되었으며 세상에 불신을 갖게 되었다.
물론 거짓말이며 작품에서는 그냥 아더의 어렸을 적 생이별한 동생이 실은 유로였다고만 나온다.
그 밖에 원작과의 차이점이라면 유로는 리리아랑 맺어지고 아돌은 피나와 잘 될 수 있었는데(여기서 피나는 석조상으로 봉인되는게 아니라 마력을 잃고 보통 여자가 된다) 그냥 떠나버린다는 점 정도. 역시 한 번 공략에 성공한 여자는 그에게 있어서 아무 의미 없는 존재인 것이다.
... 추가로 말하자면 여기서 레아는 완전히 개밥이다. 아무도 신경을 안 쓴다. 독자적인 출연도 없으며 대사도 없다.
피나의 출연씬에 배경으로 존재한다고 보면 된다.
나도 이 포스팅을 하면서 '어? 레아가 나오긴 나왔나?' 싶을 정도니...
텍스트 게임북답게 글의 어투라던가 그런게 상당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작품은 유로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표현된다. 이 유로는 평생을 도둑으로 살아온지라 진중한 장면은 거의 최종보스전에 가서나 볼 수가 있으며 평소 말투도 껄렁껄렁하고 묘한 재미가 있다. 자기가 죽는 장면에서도 '으악'이 아니라 '헉쓰~'하면서 죽는 기분이랄까.
이 게임북은 필자의 인생 노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마는데....
이 책을 보고 필자도 텍스트 게임북을 만든다던지 판타지 소설을 쓴다던지 여러가지를 시작해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덕후화가 몹시 심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게 먹히지도 않는 않는 국문과 코드로 이어져버렸다. 생각해보면 큰 실수였던 거 같기도 하다.
필자가 최초로 만들었던 텍스트 게임북에 관해선 내가 나중에 따로 포스팅을 할런지는 모르겠는데 그 작품을 보면 내가 얼마나 이스란 게임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는가를 파악할 수 있다. 마왕 이름만 봐도 확실히 알 수 있음.
챕터 1 의 마왕 : 다크 철마
챕터 2 의 마왕 : 바바라
챕터 3 의 마왕 : 다크 헬퍼
챕터 4 의 마왕 : 다크 헬사
... 왠지 모르게 다크 돌림. 이스 2 스페셜의 영향을 지독하게 받았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유일하게 다크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바바라라는 마왕인데 이야말로 내 작품의 고유성을 인정하는 것이라 더욱 슬프기 그지없다.
씨발... 마왕이름이 바바라...
바바라...
바바라...
보긴 뭘 바 씹새야.
뭐 물론 고유성이 없는 캐릭터 이름들도 간지난다고는 절대 말할 수가 없으니 다크 철마란 이름은 참 구리다못해 뻔뻔하기까지한 이름이다. 이 다크 철마란 캐릭터는 두고두고 주변인들에게 회자되는 이름이 되었고 지금 생각해봐도 참으로 걸출한 네이밍이다. 어렸을 때부터 컬트의 기질이 넘쳤던 것이다 나는.
이야기가 샜는데 이 이스 게임북은 가메엔터프라이즈에서 1,2,3를 발매하여 내놓았다. 일단 2는 포스팅을 이걸로 마치고 언젠가는 1과 3의 포스팅도 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은데 여기서 왠만한 건 이야기를 다 해놔서 과연 할런지는 모르겠다. 총총.
다크 철마...